제 5장. 사실과 이상
1. 인간만이 가능한 것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다
지성의 구조는 판단 능력에 달려 있다
-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인간 지성의 근본 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이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밝혔다.
- 그는 인간만이 ‘현실’과 ‘가능’을 구별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한다.(이 둘은 인식론적 차이다.)
- 이 구별 능력은 인간 이하의 존재에게는 없으며, 신적 존재에게는 불필요하다.
신과 인간의 인식 방식 비교
- 신은 근원적 직관(intuitus originarius), 즉 생각하는 동시에 창조하는 절대적 지성을 가진다.(칸트는 근원적 직관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근원적 직관은 인간지성의 성질과 한계를 밝히기 위한 개념이다.)
- 반면 인간은 파생적 지성(intellectus ectypus)이며, 직관과 개념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에 의존해야 한다.
- 칸트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다.
2. 상징은 인간 인식의 본질적 도구이다
상징적 사고는 인간 지식의 기반이다
- 인간 지성은 단순히 표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symbol)을 필요로 하는 지성이다.
- 현실과 가능, 존재와 의미의 구별은 상징을 통해 가능해진다.
- 상징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의미를 가진 표지’이다.
원시 사고와 상징의 미분화
- 원시인이나 아이의 사고에서는 상징과 대상이 구별되지 않는다.
- 이들은 상징을 실제 사물처럼 여긴다, 즉 상징 = 현실로 받아들인다.
- 기호와 의미의 거리, 즉 상징적 거리두기가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현실처럼 작용하게 된다.
3. 상징의 혼동은 발달과 병리에서도 나타난다
어린아이의 상징 혼융 사례
- 아이는 무서운 동화 속 괴물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고 반응한다.
- ‘눈만 가리면 내가 안 보인다’는 식의 기호-현실 혼동은 대표적 예다.
- 이는 표상 이전 단계, 즉 기호와 대상의 분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다.
주술적 사고의 기호-대상 동일화
- 원시 문화에서 ‘이름을 알면 사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상징의 혼동을 보여준다.
- 주문이나 말이 즉각 물리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은 기호=행위의 혼동이다.
언어 병리와 기억 장애
- 실어증 환자는 의미 없는 음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의미 있는 단어는 기억할 수 있다.
- 이는 뇌 손상으로 인해 ‘가능한 의미를 임시 저장하는 능력’이 상실된 결과이다.
- 기호를 맥락화하지 못하면 기억도 형성되지 않는다.
4. 사실은 상징을 통해서만 이해된다
과학적 사실은 이론적 구성물이다
- 사실만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의 입장은 과학의 본질을 간과한다.
- 과학에서 ‘사실’은 단순한 감각의 누적이 아니라 상징적 가설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 갈릴레오의 운동 이론은 관찰 불가능한 ‘완전히 고립된 물체’라는 상징적 가능물에서 출발했다.
이론은 상징이 만든 현실이다
- 관성의 원리는 자연 속에 실재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전제로부터 도출된 이론이었다.
- 이러한 착상은 중세나 고대의 사고에선 부조리하게 보였던 것이며, 실현되지 않은 ‘가능’을 상상한 결과였다.
- 위대한 과학 이론은 대부분 비현실적인 상상에서 출발했다.
5. 수학은 상징 체계의 가장 극단적 사례이다
새로운 수는 새로운 상징이다
- 수학의 역사는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수들을 도입하는 과정이었다.
- 무리수·허수·부수 등은 모두 처음에는 “말할 수 없는 수”, “가공의 수”로 간주되었다.
- 수학은 점점 더 실재가 아닌 상징을 다루는 학문이 되어갔다.
수학의 위기는 상징의 인식에서 극복되었다
- 수학은 더 이상 사물의 이론이 아니라, 상징의 이론임을 인식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했다.
- 이 관점은 기하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 비유클리드 기하학도 처음에는 불가능한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체계적인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6. 윤리와 유토피아, 상징은 가능의 공간을 연다
윤리는 현실이 아니라 가능의 사유다
- 칸트는 윤리 역시 가능과 현실을 구분하는 상징적 지성의 산물이라 본다.
- 위대한 윤리 사상가들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상상력을 지녔다.
- 플라톤의 이상국가, 모어의 유토피아는 현실이 아니라 가능의 상징적 구성물이었다.
유토피아는 상징적 건축이다
- 유토피아는 “아무 데도 없는 곳”이지만, 실천적 상상력의 산물로 존재한다.
- 몽테스키외, 볼테르, 스위프트 등은 유토피아를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상징적 무기로 활용했다.
- 유토피아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을 열기 위한 구조물이다.
상징은 인간을 창조하는 능력이다
-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닌 상징적 가설의 도입이다.
- 루소가 자연적 인간이 인습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을 대체해야만 한다고 할 때, 이 자연적 인간은 하나의 상징적 개념이다.
- 루소는 “사실을 제쳐두자”고 선언하며, 상징을 통한 가설적이고 조건부의 추리에 의해서만 인간의 본질과 이상을 추적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상징적 사고는 인간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힘이며, 그 자체로 문명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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