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논문 금욕주의적 이상의 의의
1. 금욕주의적 이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금욕주의는 인간의 공허 공포를 드러낸다
- 금욕주의적 이상은 인간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예술가, 철학자, 여성, 성직자, 실패자 등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금욕을 사용한다.
- 공통적으로 금욕은 인간 의지의 공허 공포를 드러낸다. 인간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느니 차라리 허무를 의욕한다.
2. 바그너의 금욕 이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가의 급변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 바그너는 초기에는 관능과 삶을 찬미하던 예술가였지만, 말년에는 금욕주의로 전향했다.
- 그는 <루터의 결혼>을 계획하며 ‘정결의 찬미’를 주제로 다루려 했다. 이는 정결과 관능이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는 그의 예술적 태도를 드러낸다.
- 그러나 말년에 그는 금욕주의를 예술 주제로 삼으며, 관능의 반대물로서 정결을 숭배하게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주제 전환이 아니라 자기 예술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였다.
3. <파르지팔>은 진심인가, 풍자인가?
바그너는 자기 예술을 부정했는가?
- <파르지팔>은 기독교적 금욕의 극단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는 바그너가 정신과 관능에 대한 증오로 돌아선 것처럼 보이게 한다.
- 그는 일찍이 포이어바흐의 ‘건강한 관능’을 구원의 메시지로 여겼지만, 말년에 이르러 그 이상을 뒤집고, 허무와 회심의 상징을 찾는다.
-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자기부정이자 자기 예술의 말살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4. 예술가와 작품은 분리되어야 한다
예술가는 토양일 뿐, 작품이 주인공이다
- 예술가를 작품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품은 예술가의 ‘퇴비’ 위에서 자라난다.
-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내면적 혼란, 자기 말살의 욕망이 담긴 결과이지만, 그가 표현한 모순 자체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 예술가는 실재가 아니라 허구의 존재다. 그는 현실과의 거리 속에서만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 노년의 바그너는 현실이 되려는 충동에 사로잡혔고, 그 대가로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명확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기 예술을 결백시켰어야 했다.
5. 예술가에게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독립적이지 못하다
- 예술가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며, 항상 철학·종교·도덕의 시녀 역할을 해왔다.
- 바그너 역시 시류에 따라 쇼펜하우어 철학에 기대어 금욕주의를 채택했다. 그는 금욕주의 이상이 유행이 되었을 때, 이를 '철학적 후원'으로 삼았다.
바그너의 미적 신념 변화
- 초기에는 음악을 극(드라마)의 시녀로 여겼지만, 후기에는 음악 자체의 주권을 주장.
-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음악을 ‘의지’ 자체의 직접 표현, 신의 목소리로 해석함.
- 이로 인해 바그너는 음악가에서 예언자적 예술가, 형이상학의 전달자로 격상된다.
6. 쇼펜하우어의 미학과 금욕주의의 연결
쇼펜하우어의 미적 상태: 의지로부터의 탈출
- 쇼펜하우어는 미적 체험을 ‘고통 없는 상태’, 즉 의지의 고역에서의 해방으로 본다.
- 그는 '의지 없는 상태'가 미의 가장 위대한 효과라고 믿었다.
- 이는 성적 충동의 소멸과 비슷한 상태로 간주되었으며, 그의 전체 철학은 성적 에너지의 억제에 기반을 둔 체험에서 기원한 것일 수 있다.
칸트 vs 스탕달: '미'의 정의
- 칸트: "미란 무관심하게 사람을 즐겁게 한다."(관람자 입장에서만 예술과 미에 관해 고찰)
- 스탕달: "미는 행복의 약속이다."(미를 적극적인 쾌락의 감정과 연결, 여전히 관람자적 입장)
- 미적 관조는 성적인 '관심 상태'를 저지하는 작용을 한다.
- 쇼펜하우어는 '의지'로부터의 구원은 '표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봤다.
-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무관심’ 개념을 개인적 체험에 의거해 성적 억압과 연결했지만, 이는 미의 본질에 대한 전면적인 오해일 수 있다.
금욕주의를 신봉하는 철학자란?
- 결국 금욕주의적 이상을 받아들인 철학자는 고통을 회피하려는 사람이다.
- 그에게 미는 쾌락이 아니라 구원과 진정의 도구다.
7. 철학자에게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인가
분노와 적대감조차 생존의 원동력이 된다
- 쇼펜하우어는 관능, 여자, 생명 그 자체를 적으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그 적대감이야말로 그의 삶을 유지하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 그는 분노를 청량제로 삼고, 생존의 유혹으로 삼았다.
- 쇼펜하우어의 적대감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철학자 전반에 나타나는 보편적 태도의 전형이기도 하다.
철학자의 본능은 생존이 아닌 힘의 극대화에 있다
- 철학자는 행복이 아닌 '힘의 최대 발현'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로, 그 길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회피한다.
- 결혼 역시 철학자에게는 생존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며, 실제로 대부분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결혼하지 않았다.
- 소크라테스는 예외적 존재로, 오히려 철학자의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 결혼한 것처럼 보인다.
금욕주의는 철학자에게 자유와 생존의 방식이다
- 철학자는 부자유에 대한 강한 거부를 통해 황야를 택하는 결단자들의 정신을 이해하고 동경한다.
- 금욕주의적 이상은 철학자에게 세속을 초월한 정신적 독립과 실존적 긍정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 결국 그는 금욕적 태도를 통해 '생존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생존을 강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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