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신에 대한 채무 의식은 종교의 발달과 함께 심화되었다
채무 감정은 공동체의 붕괴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 인간은 혈연적 공동체의 붕괴 이후에도 신에 대한 부채 의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 계급과 종교는 세습 귀족에게서 종족신, 부족신으로 전이되며, 채무 상환에 대한 열망도 함께 계승되었다.
- 초기에는 강제로 신앙을 강요당했던 노예와 농노 계층도, 시간이 지나며 지배자들의 신앙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에 대한 채무 감정은 신의 위상을 높이며 종교의 발전을 이끌었다
- 채무 의식은 신의 개념이 발달할수록 강화되었고, 종교적 충돌과 융합은 그 발전의 흐름을 반영했다.
- 전제정치와 일신교, 세계 제국과 세계 신의 관계처럼, 종교와 정치의 통합이 이루어지며 신의 지위는 점점 상승하였다.
- 기독교 신은 가장 높은 지위의 신으로서 등장했으며, 이는 가장 극단적인 채무 감정의 발현이었다.
무신론은 인간을 부채 의식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 만약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본원적인 채무 감정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무신론과 제2의 순결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은 인류의 해방일 수도 있다.
21. 기독교는 ‘구원의 약속’으로 죄의식의 절망을 포장했다
종교는 부채 감정을 내면화하여 죄의 개념을 심화시켰다
- 죄와 의무 개념은 단순히 사라지지 않고, 내면화되며 양심의 가책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 죄의 보상은 점점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영원한 벌’이라는 사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 채무자에게서 시작된 가책은 마침내 채권자인 신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기독교는 이 절망을 '신의 자기희생'이라는 장치로 봉합했다
- 인간의 죄는 신 스스로가 희생함으로써만 보상 가능하다는 교리를 만들었다.
- 즉, 신이 인간의 채무를 대신 상환한 유일한 존재가 된 것이다.
- 이는 기독교가 제시한 역설적이고 천재적인 장난이며, ‘사랑’을 이유로 한 채권자의 자기희생이다.
22. 양심의 가책은 인간을 병들게 한 동시에 가장 무서운 창조물이었다
자기 잔인성은 내면으로 향하며 종교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억제당한 결과, 그 고통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양심의 가책이다.
- 이 내면적 고통은 종교적 구조 속에서 냉혹성과 준엄성의 극한까지 이르며, 죄책감은 신에 대한 고문 수단이 되었다.
신과 악마 사이의 틈에 스스로를 끼워 넣는 인간
- 인간은 자기 존재 자체를 신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하며, 자신을 끝없는 죄와 벌의 고리 속에 가두고, 그것을 영원한 심판과 지옥으로까지 확장시킨다.
- 이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고정 관념의 미궁에 빠지게 되는 의지의 착란이다.
양심의 가책은 인간 역사상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다
- 인간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로 보이게 하려는 의지를 가지며, ‘신성한 신’이라는 이상 앞에서 자기 부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 이 모든 고통 속에서 때로는 사랑과 구원의 외침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는 이제 사라졌다.
- "이 대지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정신병원이었다."
23. 그리스의 신은 인간을 옹호하고 감싸는 존재였다
그리스 신들은 고귀한 인간의 반영이었다
- 유럽은 신의 개념을 자기 고행과 자기 능욕의 도구로 사용했지만, 그리스의 신들은 오히려 인간의 고귀함과 독립성을 반영하는 존재였다.
- 그리스인들은 신을 통해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신은 인간의 잔혹한 본능을 비난하기보다 이해와 변명의 방식으로 다뤘다.
죄책감보다 ‘어리석음’을 탓한 고귀한 정신
- 고대 그리스인은 죄보다 ‘어리석음’과 ‘머리의 혼란’을 인간의 재앙 원인으로 보았다.
-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은 “신이 그를 기만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인간을 감쌌다.
- 신은 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때론 악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존재로 여겨졌다.
24. 이상은 파괴와 희생 위에 세워진다
이상을 세우기 위한 희생의 댓가
- 모든 이상은 엄청난 현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성전이 세워지려면, 다른 성전이 파괴되어야만 했다는 원리가 반복된다.
- 양심 해부와 자기 부정의 오랜 유산을 물려받은 현대인은 스스로 자연을 부정하고, 양심의 가책과 자연을 연결짓는 감정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삶을 거부하는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 반자연적인 것, 반동물적인 것에 도취된 기존의 이상은 삶을 부정한다.
- 그럼에도 인간은 선량하고 편안한 무리 속에 숨어 현실을 살아가길 택한다.
- 이 시대를 극복할 정신은 정복과 모험, 고통에 익숙한 강한 정신이어야 하며, 이는 ‘커다란 건강’, 즉 자기 자신과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다.
새로운 구원자, 반허무주의자의 도래
- 미래에는 사랑과 모멸을 동시에 지닌 창조적 인간이 나타날 것이다. 그는 현실을 구원하고 허무주의를 넘어설 것이다.
- 정오의 결단처럼 새로운 인간은 의지를 회복시키고, 목표와 희망을 대지에 다시 심을 것이다.
25. 차라투스트라의 몫을 넘지 않기 위해 침묵하다
- 더 나아간 말은 아직 오지 않은 더 강하고 미래적인 인간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될 것,
- 그 권한은 무신론자 차라투스트라, 즉 신을 넘어서고 허무를 초극한 자에게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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