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불안의 개념
1. 순진함(순결)의 본질: 무지와 불안
순진함(순결)이란 단순한 도덕적 청결함이 아니라 무지이다.
- 인간이 순진한 상태에 있을 때, 정신(Spirit)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이며, 단지 자연적 조건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즉, 순진한 상태에서는 선악의 구별을 알지 못하며, 이를 통해 선행을 쌓을 수도 없다.
- 따라서 순진함은 신학적 공덕과는 무관한 상태이다.
그러나 순진함 속에는 불안(Angst)이 내재해 있다.
- 불안이란 단순한 공포(fear)나 걱정(anxiety)이 아니라, 자유의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정신은 꿈꾸면서 자신의 현실성을 투영한다.
- 하지만 그 현실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Nichts)’이며,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 채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 이 불안은 정신이 자신의 가능성을 엿보게 만들지만, 그 가능성을 붙잡으려 하면 사라져버린다.
2. 불안과 인간의 자유: 선택의 가능성
불안은 단순한 두려움과 다르며, 오히려 자유(freedom)의 가능성으로부터 나온다.
- 동물에게는 불안이 없다. 왜냐하면 동물은 정신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자유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 인간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 불안을 사랑한다.
- 인간은 불안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불안에 끌린다.
- 이는 불안이 자유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의 불안이 모험, 미지의 것, 신비로운 것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 아이들은 불안을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그 불안을 즐긴다.
- 반대로, 정신이 없는(혹은 정신이 약한) 존재일수록 불안도 적다.
- 문화적으로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남아 있는 사회일수록 불안이 깊으며,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깊이 있는 문화를 형성한다.
불안은 공감적 반감이며 반감적 공감이다.
- 우리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어딘가 달콤한 감정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 불안은, 자유가 불완전한 형태들을 겪은 뒤 가장 심오한 의미로 자신에게 다가올 때, 그것은 우울과 똑같은 의미가 된다.
3. 순진함에서 허물(죄)로의 이행: 질적 비약
순진함 속에서 (양의적인) 불안은 허물(죄)로의 질적 비약을 유발한다.
- 불안을 통해 죄를 짓는 사람은 순진한 자이다.
-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의지로 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불안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는 허물 있는(죄 지은) 사람이다.
- 그는 불안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했으며, 그 결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진함에서 허물로의 전환은 변증법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질적비약은 양의적인 것의 바깥에 있다.
4. 금령(禁令)의 역할: 자유를 깨닫게 하는 순간
성서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령을 듣는다.
- 하지만 아담은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 왜냐하면 선과 악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는 "악을 행하지 말라"는 명령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즉, 금령 자체가 아담에게 자유의 가능성을 각인시켰고, 그 가능성이 불안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더 나아가, 금령 뒤에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심판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러나 아담은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 그렇지만 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엄격한 경고를 들을 때,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협을 감지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금령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를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 금령은 아담에게 "너는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 이 가능성이 불안으로 발전하고, 결국 선택(죄)으로 이어진다.
5. 순진함의 최종 단계: 타락 직전의 상태
순진함이 정점에 이르면, 그것은 불안과 금령을 통해 자신이 상실될 것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 순진함은 아직 허물이 아니지만, 곧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을 동반한다.
- 심리학적으로 볼 때, 순진함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수 없는 상태이며,
- 단 한 마디의 말, 단 하나의 금령, 단 하나의 계기로 인해 타락(허물)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지닌 상태이다.
순진함은 결국 허물로 넘어가기 직전의 상태에서 가장 강렬한 불안을 경험한다.
- 이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을 깨닫는 순간이며, 인간이 더 이상 순진함에 머물 수 없게 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6. 심리학이 설명할 수 있는 한계
심리학은 인간이 어떻게 순진함에서 허물로 넘어가는지의 과정은 설명할 수 있다.
- 즉, 금령이 자유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그 가능성이 불안을 낳으며, 불안이 결국 질적 비약을 유발하는 과정은 심리학적으로 분석 가능하다.
그러나 심리학은 왜 인간이 결국 허물을 선택하는지, 혹은 왜 불안이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 질적 비약 자체는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신비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이유로, 죄의 개념은 단순한 심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윤리학과 교의학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최종 정리
- 순진함은 단순한 청결함이 아니라 무지이며, 그 속에는 불안이 내재해 있다.
-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에서 비롯되며, 인간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 불안은 윤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타락(허물)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감정이다.
- 금령은 인간에게 자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며, 이것이 불안을 증폭시켜 결국 허물을 선택하게 만든다.
- 순진함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가장 강렬한 불안이 경험되며, 이는 곧 허물로의 질적 비약을 예고하는 순간이다.
- 심리학은 이 과정까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질적 비약 자체의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즉, 순진함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동반하며, 불안은 인간을 허물로 이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최종적인 선택의 순간은 심리학적 분석이 아닌, 윤리학적·신학적 이해로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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