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징(象徵)으로서의 신화
Lévy-Bruhl에 따르면, 진보된 사회에서도 집합표상이 존속한다면 신화는 단순히 원시적 단계에 속하지 않고 모든 사회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는 개인의 사회에 대한 분여가 직접적일 때 신화는 희소하지만, 분여가 간접적인 수단에 의해 달성되어야 할 때 신화가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고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각자의 신화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18세기의 자유와 평등은 신화였으며, 현대에는 '20세기의 신화'가 있습니다.
신화는 단순한 인식의 산물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운동적인 요소가 중요합니다. 신화의 형성에는 분여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분여가 본능적이지 않고 표상될 때 신화가 탄생합니다. 이때의 논리는 감정의 논리이자 상상의 논리 혹은 구상력의 논리입니다. Ribot는 인간이 감각을 초월하려면 추리와 상상이라는 두 가지 수단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정의 논리를 상상의 논리와 동일시하며, 감정적 추이는 창조적 상상의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
Lévy-Bruhl은 미개인에게 신화와 꿈이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개인의 심리에는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가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감각적 실재와 신비적 세계 사이에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꿈은 미개인에게 깨어있을 때의 지각과 같은 가치를 가지며, 꿈의 모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상력의 작용은 인식, 꿈, 환각, 광기와 연관이 깊습니다. 이들은 모두 상상표상의 강도, 감각적 분명함, 현실을 초월한 자유로운 형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시인은 자신의 구상력으로 창조한 인물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고통을 현실의 고통처럼 느낍니다.
(심리학에서 표상이 고정된 대상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심상은 단순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감정과 주의의 배분에 의존하는 전체적인 생명활동이고 사건입니다. 심상은 그 조성 요소가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갖습니다. Goethe는 심상의 전개를 통해 창조적 구상력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꽃을 떠올리면 그 꽃이 끊임없이 새로운 꽃으로 변한다고 묘사했습니다. 이는 심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창조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Dilthey에 의하면 우리들의 정신물리적 존재 안에 우리들에게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가 주어져 있고, 그리고 이 관계를 우리들은 도처에 이입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내적 상태를 외적 형상에 의해 해석내지 감각화하고, 외적 형상을 내적 상태에 의해 생기 부여 내지 정신화합니다. 구상력 논리의 법칙은 주관과 객관의 생명적 결합점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Dilthey는 구상력이 형(型)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을 만들어내며, 이는 신화, 형이상학, 시의 상징이 발전하는 근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상징은 타이프적인 형상입니다. 타이프는 관찰이 뒤섞인 영감의 창조이며, 로고스와 파토스의 통일인 형입니다. 구상력의 논리는 형의 논리이며, 타이프는 외부에 있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자기 정열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4. 전논리(前論理)로서의 신화
Lévy-Bruhl도 전논리적 사고 방식이 오늘날 문명 사회에서도 존속하며 신화의 원천으로 인정된다면 모든 신화 속에 공통의 구조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인의 구상력과 신화 창조의 구상력은 다르지만, 시적 구상력의 법칙이 미개인의 신화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작용함이 발견됩니다.
Lévy-Bruhl은 집합표상에서 표상이 고립되지 않고 감정적, 운동적 요소와 하나임을 강조합니다. 신화의 논리는 일종의 상징의 논리로, 분여의 법칙에 따르는 미개인의 집합표상에서는 사물이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물이며, 일체의 사물은 가시적 존재와 똑같이 비가시적 존재를 갖는 것입니다.
Renan은 신화가 교의를 감추기 위해 상징을 창조했다고 추정하는 것은 오류이며, 신화는 사상과 언어, 이데아와 그 표현과 같이 동시에 태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신화는 포장하는 것과 포장되는 것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미분의 것, 상징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합니다. 미개인이 그가 창조한 신화의 의미를 이해하였느냐 못하였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화에서는 지향은 사물 그 자체와 구별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상징은 내와 외가 하나이며, 상징의 가장 깊은 의미는 상징하는 것 없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의 본질입니다.
구상력은 이성보다도 근원적입니다. 구상력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하나로 결부시키며, 파토스와 로고스의 통일을 이루어냅니다. 신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에서는 구상력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상력의 상은 상징으로 보여져야 하며, 이는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것입니다. 구상력이 만들어 내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형입니다. 구상력의 논리에는 형의 다양성이 근저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양한 형들이 결부된 형은 '형 없음 형'입니다.
구상력의 논리는 개물(個物)의 논리이며, 개물과 개물은 객관적인 일반자에 의해 결부되지 않습니다. '형 없는 형'으로서 구상력의 논리는 특수와 일반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모두 발생하는 것은 상징이고, 그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그 밖의 것을 지시한다.”(Goethe)
개물은 개물로써 자기를 완전히 표현하여 다른 것과 똑같이 독립된 개물과 무한히 연결되는 것입니다. 개물의 독립성이 어디까지나 승인되면서 그러고도 개물이 자기와는 전혀 다른 일반자와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 데에 구상력의 논리가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상력은 지적이면서도 감정적이며, 이는 개물적이면서도 일반적입니다.
Usener에 따르면, 신화적 표상작용은 심령화(Beseelung)와 형상화(Verbildlichung)라는 두 주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심령화는 감정적 요소, 형상화는 지적 요소로, 이 두 과정은 결합되어 신화, 종교적 표상, 언어, 시의 기초가 됩니다. 이는 무의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며, 논리적 사유의 법칙을 벗어나지만 정신에 대한 직접적 확실성과 현실성을 가집니다. 물(物)과 상(像)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는 이 과정에서 구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Schleiermacher가 종교와 과학을 구분한 것과 달리, Usener는 이들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통일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자의 새로운 사상도 시인의 구상과 유사하며, 이는 신화적 표상작용과 동일한 정신력에 의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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