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개념이 개념 자신과 다른 어떤 것과 관계하는 영원한 실재라는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칸트는 이 영원한 개념을 시간과 관계시킵니다.
칸트에게 있어서 '선험적'이란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험은 본질적으로 시간적이며, 시간적인 모든 것은 경험의 영역에 속합니다. 따라서 '선험적'이란 시간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칸트는 선험적인 것이 시간에 선행하거나 시간의 밖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선천적 인식으로부터 영원한 개념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영원한 개념은 자신의 근원에 의해서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개념의 근원은 '선험적 자아' 혹은 '선험적 통일'입니다. 이러한 자아 혹은 통일은 영원 자체이며, 따라서 칸트의 선험적 자기 의식은 정신적 주체로, 즉 신으로 파악된 파르메니데스의 실체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선험적 자아'에 대해 그것이 '있다'고만 말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정확하게는 그 일자는 일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존재나 양의 범주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와 구별되지 않는 어떤 것입니다.) 이 선험적 자아는 개념 속에서, 개념에 의해 스스로를 드러내며, 모든 존재의 원천입니다. 이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선행하고, 불변하며, 모든 순간에 타당합니다.
영원한 범주에 의한 영원 자체의 한정은 신적인 오성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칸트는 이 오성 속에서 모든 경험적 잡다(雜多)가 자기 의식을 통하여 동시에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신적인 오성은 그 표상의 대상이 실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표상 자체의 실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특성을 갖습니다. 신적인 오성은 자기 자신을 사유함으로써 사유 가능한 모든 것을 사유하고, 오로지 이 사유 작용을 통해서만 사유된 대상을 창조해 냅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존재를 드러내는 개념과 일치하고 있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EU 또는 Ou)를 '신'이라고 정당하게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신이 아닌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념을 신에게 적용할 때 개념을 개념과는 다른 어떤 것과 관계시켜야만 합니다. 이런 관계로서의 개념은 영원한 것이지 영원 자체는 아닙니다. 개념이 영원자체라면 오로지 신만이 스피노자주의처럼 사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의식의 내용으로부터 아무 것도 끌어낼 수 없으며(내용없는 점, 텅빈 그릇), 참된 인식을 위해서는 사유된 대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신이 아닌 어떤 실재의 개념은 관계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개념이 영원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는 점에서 스피노자주의는 불합리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념이 영원과의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영원 혹은 신은 다양한 것들을 자신의 통일 속에 포함하고, 개념을 통해 이 잡다한 것들을 창조합니다. 이 잡다한 것들은 시공의 세계와 관계없는 이데아의 우주이며, 영원 자체는 이 우주 속에서 스스로를 전개합니다.
칸트는 비시공적인 직관이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우리는 범주-개념을 다양한 잡다한 요소들에 적용할 수 있으며, 신적이 아닌 인식도 플라톤적 이데아의 비시공적인 우주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실재는 이를 할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주의가 신에게만 가능하듯, 플라톤주의도 인간의 오성이 아닌 천사와 같은 비신적인 오성에게만 가능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게 다양한 잡다한 요소들은 항상 시공의 형태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개념은 시간 중의 어떤 순간에 현상하며, 사유는 필연적으로 시간적인 세계와 관계합니다. 칸트의 분석에 따르면, 영원한 개념들은 시간 자체와 관계될 때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자기 의식일 뿐인 '선험적 자아'는 스피노자의 신과 같은 것으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언표할 수 없습니다. 이 자아는 비시공적인 잡다와 관계하는 범주의 원천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파악한 자아는 시간의 밖에서 사유해야 하므로 인간의 자아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유는 시간 속에서 완수되는 시간적 현상이며, 순전히 경험적입니다. 시간적인 것에 영원한 개념을 적용하려면 개념이 도식 작용을 받아야 합니다. 이 적용은 시간에 앞서거나 시간의 밖에서 완수됩니다. 따라서 절대적 인식은 영원한 개념과 시간 사이의 관계 전체이며, 종합적인 원칙의 전체입니다. 이것이 칸트의 존재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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