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코제브-역사와 현실 변증법-3. 영원 시간 그리고 개념-1

by Ang ga 2024. 6. 18.

 

3. 영원 시간 그리고 개념

 

철학사에서 헤겔의 위치와 그 독자성

 

철학사에는 두 개의 거대한 시기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컨트에까지 이르는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헤겔로부터 시작되는 시기이다. (본문 중에서)

 

역사적 세계의 구체적 현실에서 출현하는 학문에 관해 논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선후' 즉 생성과 시간을 언급하게 됩니다. 따라서 학문과 현실의 관계를 물을 때, 학문과 시간의 관계를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헤겔이 《정신현상학》 제8장 2부 2절 2소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철학이 존재한 이래 늘 제기되어 온 오래된 문제입니다.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발견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진리란 변경되거나 부정될 수 없는 것으로,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타당한 것입니다. 진리는 변화에 종속되지 않으며, 영원하고 비시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시간 중의 특정 순간에 발견되고, 세계 속의 인간에 의해 현존하므로 시간 속에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진리의 문제를 제기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영원한 것, 시간과 무시간적인 것의 관계를 물어야 합니다.

 

헤겔의 개념을 사용하자면, 체계적으로 연관된 개념적 인식의 전체를 '개념'이라 부를 수 있는데, 이러한 전체가 진리를 주장합니다. 진리란 광의의 의미에서 '개념', 즉 의미 있는 말들로 연관된 전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과 시간 사이의 관계를 물을 수 있습니다.

 

헤겔은 2소절 첫 번째 귀절에서 이 문제에 답하며, 시간은 현존하고 있는 개념 자체라고 선언합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설에서도 이와 동일한 내용을 언급합니다.

 

 

개념과 시간 간의 긍정적 관계나 부정적 관계를 설정하는 데는 몇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합니다.

 

개념을 영원과 동일시하는 첫 번째 가능성은 파르메니데스와 스피노자의 입장입니다.

개념을 시간과 동일시하는 세 번째 가능성은 헤겔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개념을 영원한 것으로 보고, 이는 개념이 영원적인 것과 관계하는 경우, 시간과 관계하는 경우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원적인 것과 관계하는 첫 번쨰 유형은 개념이 시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유형(플라톤)이고, 두 번째 유형은 개념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유형(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시간과 관계하는 경우는 칸트의 경우입니다.

네 번째 가능성인 개념을 시간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는 회의주의적 사유로, 진리의 이념을 부정하여 철학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세번째 경우는 이와 달리 진리의 이념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개념은 시간적인 것이 아닌 시간 자체이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습니다.)

 

( 여기서 '개념'은 특정한 개념이 아니라 모든 개념들의 총체로, 완전한 체계와 관념 중의 관념을 의미합니다. 헤겔적, 칸트적 의미에서의 '이념'입니다. '시간'은 시간적 현실을 뜻하며, '영원'은 시간의 반대인 비시간적 현실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것'은 영원 자체와 구별되며, '시간적인 것'은 시간 자체와 구별됩니다. )

 

헤겔은 현상 세계를 '현존재' 혹은 '정재(Dasein)'라고 명명합니다. 여기서는 단순화를 위해 '개념'과 '현존재'에 관해 논의하겠습니다.

 

'현존재'란 본질적으로 변화, 즉 시간적 실재입니다. 변화는 오로지 현존재에만 존재하며, 현존재는 시간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 자체입니다. 반면에 '개념'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며, 시간적인 것과는 다르고 시간 자체와도 다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와 스피노자처럼 개념이 영원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개념이 영원 자체가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개념(즉 로고스, 단어 혹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 개념 자체와 다른 어떤 것과 관계하고 있다고 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개념은 영원 자체가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현실적 인간이 의미를 지닌 말을 통해 표현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개념들을 포괄하는 전포괄적 개념은 영원한 것이지만, 시간 속에서 실존합니다. 개념은 변화 속에 있지만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으며, 변화와 다른 것입니다.

 

시간적 현존재(세계 속의 인간)를 선으로 상징한다면, 개념은 이 선 위에 있는 개별적 점들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 점들은 본질적으로 선을 이루는 다른 점들과 다릅니다.(그림1) 플라톤은 개념이 자기 자신과 다른 어떤 것과 관계한다고 보았으며, 파르메니데스와 스피노자는 이를 비판했습니다. 헤겔 역시 플라톤과 여타 철학자들을 이 점에서 비판했습니다. 헤겔은 개념이 자기 자신 이외에는 어느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은 개념이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 자체와 관계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점에서 플라톤을 따랐으나, 칸트는 영원한 개념이 시간과 관계한다고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