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인간이란 무엇인가
제1장 인간의 자기 인식에 있어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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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 인식: 인간 탐구의 출발점
자기 인식은 철학의 변하지 않는 중심이었다
철학의 모든 전통에서 자기 인식은 탐구의 중심적인 목표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회의론자조차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은 단순한 지적 탐구가 아닌 도덕적 의무로 인식되었다.
• 자기 인식은 철학적 사유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이었다.
• 외부 세계의 객관성에 대한 회의조차도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로 돌아갔다.
•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외적 조건의 사슬을 끊고자 했다.
2. 내성: 자기 인식의 첫 경로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요구는 철학적 탐구의 오래된 기초였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내성만으로 인간을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 데카르트적 자아 인식은 현대 심리학에 의해 의문시된다.
• 행동주의는 내성을 과학적 방법으로 보지 않는다.
• 그러나 내성 없이는 인간 심리의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 감정, 지각, 사고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인간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 내성은 인간 경험의 단편만을 보여준다. 그 자체만으로는 전체를 구성하지 못한다.
• 내성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3. 아리스토텔레스: 감각적 인식의 긍정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인식을 감각의 즐거움에서 출발시킨다.
• 인간은 감각을 사랑하고, 특히 시각을 즐긴다. 시각은 사물의 구분을 가장 잘 해내는 인식 수단이다.
•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과 지식을 단절시키지 않는다. 인식은 기억, 상상, 경험, 이성을 통해 점차 고도화되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 인간 인식의 뿌리는 외부 세계에 대한 적응과 반응에서 시작된다. 감각적 경험은 인간 문화와 지식의 출발점이다.
4. 내향적 관점의 진화
인류 문화는 내면을 향한 자기 탐구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기 인식은 점차 사변적 문제를 넘어서 도덕적 명령이 된다.
• 초기 원시적인 우주론에는 원시적인 인간론이 항상 병존했다.
• 종교는 인간 존재의 문제를 신화보다 더 깊은 구조로 확장하였다.
•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도덕적, 종교적 율법이 되었다. 인간의 자기 탐구는 종교와 철학의 모든 고등 형태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 유대교,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모두 같은 발전 경로를 보인다.
• 내면을 향한 관심은 인간이 외부 세계와 맺는 관계를 재정의하게 만든다.
5. 소크라테스: 인간 문제의 전환점
자연 철학에서 인간 철학으로의 이동을 이끈 사상가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설명하지 않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 그는 기존 철학을 반박하지 않지만, 모든 문제를 인간 중심으로 재조명한다.
•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은 자연에 대한 독립된 이론을 내려놓는다.
• 윤리학조차도 인간이란 존재를 묻는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나는 나 자신을 탐구하였다”는 말은 철학의 중심을 인간으로 전환시킨 선언이다.
• 그는 인간의 본성을 단정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 오히려 인간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로 설정하고, 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6. 철학의 대화적 전환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지적 독백이 아닌 ‘대화’의 형식을 가진다
진리는 어떤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니라, 상호 물음과 응답의 과정(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 인간은 합리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존재이다.
• 인간 지식과 도덕은 모두 이 능력의 발현이다.
• 자기 인식은 인간이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되는 기반이다. “반성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인간 존재의 핵심 조건을 드러낸다.
•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조건을 점검해야 한다.
• 철학은 더 이상 자연이나 이념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2>
1. 인간 인식의 고전적 출발점: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은 철학의 원초적 과제였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인간 탐구의 원형이 되었으며, 플라톤을 통해 전 고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 그의 방법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으며, 인간학적 철학의 뿌리로 남아 있다.
• 인간 본질을 외적 조건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는 고전 철학의 공통된 태도이다.
• 인간의 가치는 외부가 아닌 내면의 이성적 태도에서 결정된다.
“외부의 변화는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지 못하며, 오직 자기 내면의 판단이 삶을 결정한다.”
2. 스토아 철학: 자기 통제와 내적 질서
“영혼의 내적 질서가 곧 우주의 질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자신과의 조화를 우주 질서와의 조화로 연결했다.
• 인간은 자기 내면의 ‘다이몬’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 자기 주체성은 인간의 특권이자 도덕적 의무이다.
• 우주의 질서와 인간성의 질서는 동일한 근본 원리의 다른 표현이다.
“우주는 변이(變異)이나, 영혼의 판단은 흔들릴 수 없다.”
• 스토아 철학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도덕적 독립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인간은 우주와 더불어 완전한 균형 속에 있고, 이 균형은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서도 혼란될 수 없다.
• 이 관점은 고대 철학의 핵심 정신이 되었지만, 곧 기독교와 충돌하게 된다.
3. 기독교의 도전: 인간 중심 철학의 전도
인간의 독립성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기독교는 스토아 철학의 인간관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인간학을 제시한다.
• 인간의 이성은 타락 이후 자기 스스로를 회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 구원은 이성의 힘이 아닌, 신의 은총에 의해 주어진다.
• 인간 내면의 자율성은 오히려 교만과 죄의 근원으로 간주된다.
“네가 알지 못하는 너 자신을 너의 스승에게서 들으라. 하느님께 귀를 기울여라.”
•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성에 대한 불신과 신의 계시에 대한 의존을 강조한다.
• 이로써 철학은 신비를 푸는 도구가 아니라, 신비를 확인하는 통로가 된다.
4. 파스칼: 근대에서 다시 심연을 응시하다
“기하학으로 인간을 정의할 수 없다”
파스칼은 근대 이성과 기독교 신앙의 긴장을 통합하려 한 사상가이다.
• 인간은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 인간 정신은 섬세하고 모순되며, 기하학적 정신이 다룰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 철학은 실제 인간의 삶과 감정, 모순을 직면해야 한다.
“모순이야말로 인간 실존의 진정한 요소이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존재와 비존재의 혼합물이며, 이중적 실존을 가진다.
• 진정한 자기 인식은 이성에 의한 분석이 아닌, 신비를 수용하는 종교적 태도에서 시작된다.
5. 종교와 인간학: 신비 속의 인간
“하느님이 숨겨져 있듯, 인간도 숨겨져 있다”
파스칼은 종교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가해성을 받아들이는 사유를 제시한다.
• 종교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파괴, 구원과 은총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수용한다.
• 인간은 호모 압스콘디투스(homo absconditus), 즉 숨겨진 존재이다.
• 구원은 설명 가능한 질서가 아니라, 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다.
“부조리의 논리야말로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가장 깊이 포착한다.”
• 종교는 철학이 다다르지 못하는 존재의 심연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 철학이 추구하던 자기 인식은, 이제 자신을 버리고 신에게 귀 기울이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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