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병자에 대한 동정이 건강한 자에게 끼치는 위협
병자는 강자의 위험이 된다
- 현대 사회에서 병적인 상태가 보편화되며, 오히려 정신적·육체적으로 건전한 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 진정한 위험은 악인도, 맹수도 아닌 '병자'들이다.
- 그들은 자기 혐오에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건강한 이들을 질투하고 끊임없이 정의와 도덕을 가장한 복수를 꾸민다.
- 특히 이들 병자는 자신의 약함을 미덕으로 포장하며, “우리만이 선하며 의롭다”는 식으로 건강과 성공을 도덕적으로 몰아세운다.
복수의 연극과 병자의 지배 욕망
- 복수심과 권력 욕망으로 가득한 이들은, ‘고귀한 분노’, ‘아름다운 영혼’ 등의 위선적 연기를 통해 자신들의 무기력과 실패를 감추려 한다.
- 특히 병든 여성의 교활함은 사회와 가족 내부에서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며 건강한 자를 병들게 만든다.
- 그들의 최종 목표는 행복한 자로 하여금 자기 행복을 죄책감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한 것은 치욕이다”라는 인식을 퍼뜨려 세계 전체를 '뒤집힌 도덕'으로 재구성하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건강한 자의 생존권, 보호되어야 한다
- 건강한 자는 병자와 혼동되어선 안 되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들은 미래를 책임지는 존재들로서, 병자를 구원하는 역할까지 떠맡아선 안 된다.
- 오히려 그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좋은 공기’, 즉 고립된 공간이 필요하다. 문화와 정신병원의 거리 확보, 이것이 건전한 자의 생존 조건이다.
- 인간에 대한 과도한 동정과 혐오, 이 두 극단은 모두 건강한 자의 타락을 부른다. 이 두 ‘최악의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자의 첫 번째 임무다.
15. 금욕주의적 성직자의 역할 – 병자들의 원한을 다스리는 지배자
병자를 다스리는 기술자이자 동류
- 금욕주의적 성직자는 병든 무리를 위한 구원자이자 지배자이다.
- 그는 그들과 유사한 병적인 상태를 지녔기에 그들을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들을 억제하고 보호할 강한 의지와 지배 본능을 갖춘 자이다.
- 그는 병자들을 외부의 위협뿐 아니라, 병자 자신 내부의 분열과 원한으로부터도 보호하며 그들의 파괴적 본능을 통제한다.
원한을 전환하는 자, 성직자의 핵심 기능
- 병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원인을 찾고 책임자를 설정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 “누군가의 잘못이다”라는 단순하고 강렬한 감정의 발산은 그들에게 마취제와 같다.
- 성직자는 이 원한의 에너지를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향하도록 유도한다.
- “고통의 원인은 너 자신이다”라는 설교는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병자들의 감정을 안정시키고 폭발을 막는 도구가 된다.
- 이는 성직자의 심리적 조종술이자 고통의 방향을 통제하는 기법이다.
금욕주의 성직자의 정치적·심리적 전략
- 그는 강자, 건강한 자, 맹수 같은 자들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면서도, 교활함과 술책으로 그들을 교란하거나 회피한다.(그의 곁에 있으면 건강한 자도 병이 든다.)
- 때로는 곰처럼 위엄 있게, 여우처럼 교활하게, 표범처럼 신속하게 병자 집단과 강자 사이에서 균형을 조율한다.
- 그는 병자 무리 내부의 원한과 자기 파괴 충동을 조정하고 가라앉히는 장인이며, 병자의 눈에 신과 같은 존재로 기능하는 인물이다.
고통의 책임 전가 메커니즘
- 병자들은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심리적 원한으로 변환시켜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 의심하고,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가해자’로 설정한다.
- 성직자는 이 왜곡된 분노를 활용해 병자 스스로를 죄인으로 규정하게 만들며, 외부를 향한 복수를 내부의 통제로 전환한다.
- 이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병자 무리를 통제하기 위한 권력 기술이다.
16. 금욕주의적 성직자의 본질과 ‘죄’의 생리학적 해석
병을 다스리기 위한 ‘감정의 재구성’
- 금욕주의적 성직자의 역할은 질병의 치료자가 아닌, 병자의 ‘감정 구조’를 관리하는 자이다.
- 그는 ‘죄책감’과 ‘유죄’, ‘타락’이라는 개념을 도구로 삼아, 병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자기 내부로 향하도록 유도한다.
- 고통의 외부 발산을 차단하고 자기 극복으로 전환하는 감정치료법을 통해 무력한 병자의 파괴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그가 감당한 사명이다.
‘죄’는 도덕이 아닌 생리의 문제
- 니체는 ‘죄’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 아니라 생리적 장애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고 본다.
- 죄의식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문화적·종교적 ‘원근법’이 만든 상징일 뿐이다.
- "책임이 있다"는 감정 자체가 정당성을 담보하지 않으며, 이는 마녀재판처럼 스스로 죄를 믿는 자들조차 실제 죄가 없었던 역사적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 그 모든 개념들 ― ‘죄’, ‘영혼의 고통’, ‘죄책감’ 등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생리적 해석의 실패물일 뿐이며, 니체는 이것을 정신보다 몸의 문제, 철학보다 의학의 문제로 본다.
17. 금욕주의적 성직자, ‘치료자’인가 ‘위로자’인가
‘병’을 고치지 않는 의사
- 금욕주의적 성직자는 자신을 ‘구원자’로 자처하며 위로자 역할에 몰두하지만, 병의 원인 자체에는 접근하지 않음.
- 그가 진정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은 고통 자체의 감각, 다시 말해 불쾌감, 고통받는 자의 감정적인 반응뿐이다.
- 니체는 이 점에서 그를 ‘진짜 의사’로 부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고통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일시적인 진정제만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기 때문이다.
‘위로의 천재’, 종교의 기능
- 금욕주의자, 특히 기독교 성직자는 고통을 줄이는 데 필요한 모든 감정적 위안 수단을 총동원한다.
- 그리스도교는 진통제, 마취제, 청량제로 가득 찬 ‘위로의 보물창고’이며, 이를 통해 침울하고 피로한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 특히 생리적으로 억압된 자들(예: 피로, 우울, 무기력에 빠진 자들)은 감정의 자극을 통해 일시적 활력을 얻는다.
- 니체는 이러한 위안의 전략을 “신성한 스포츠맨십”이라 부르며, 종교가 결국 불쾌감에 대한 해석과 처리 방식이라고 본다.
종교란 억압감의 심리적 해석
- 이런 억압감은 다양한 생리적·역사적 원인에서 발생한다: 종족 교배, 이질적 계급 혼합, 잘못된 이주, 종족의 노쇠, 중세의 알코올 중독, 패혈증, 전염병 등.
- 하지만 고대인들은 이 억압의 ‘원인’을 알지 못했고, 그 결과 고통을 도덕적, 심리적으로만 해석하게 된다.
- 이처럼 생리적 병을 심리적 또는 종교적 방식으로 치유하려는 모든 시도,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종교’의 본질이다.
‘최면’ 상태로 삶을 낮추는 기술
- 불쾌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교적 전략은 삶의 기능을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감정 제거, 욕망 억제, 활동 회피, 인간관계 단절, 최소한의 생존만 유지한다.
- 니체는 이 상태를 생리적 ‘최면’, 즉 동물의 겨울잠이나 식물의 여름잠에 비유하며, 이는 인간이 의식은 유지하되 소모를 최소화하는 생존 방식이라고 본다.
-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광기나 종교적 환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반적 인류 현상’이다.
‘해탈’은 덕이 아닌 무(無)의 실현
- 인도 철학(불교, 베단타)에서 ‘해탈’은 선악의 초월,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행위, 의무, 고통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 중요한 점은, 이러한 해탈이 도덕적 정진의 결과가 아니라 생리적 위안의 완성이라는 것.
- 니체는 이를 “최면적 무감각의 정점”, 즉 근심 없는 깊은 잠에 불과하다고 본다.
- ‘브라만과의 합일’, ‘절대자와의 몰입’은 실제로는 자기 보존을 위한 무감각 상태의 이상화일 뿐이다.
해탈이란 고통의 ‘소멸’이 아닌, ‘감각의 차단’
- 고통받는 자에게 최고의 가치는 행동도, 진리도 아닌 완전한 정지와 안식, 곧 ‘무의 상태’다.
- 그래서 모든 염세주의 종교는 결국 ‘허무’ 그 자체를 신격화한다.
- 이처럼 금욕주의적 성직자와 종교가 수행하는 기능은, 결국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낮은 상태로 끌어내려 ‘참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시적인 생존 기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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