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직자 도덕의 기원: ‘순수’와 ‘불순’의 대립
- 성직자 계급은 도덕 개념을 정신적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세습 계급은 성직자 계급이었고, 이들은 '순수/불순'이라는 신분 개념을 ‘좋음/나쁨’의 도덕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 ‘순수’의 개념은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순수한 사람은 단순히 ‘몸을 씻는 자’,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자’, ‘불결한 여인과 교합하지 않는 자’ 등의 의미였다. 그러나 이것이 점차 도덕적 순결로 바뀌게 된다. - 성직자의 금욕적 가치체계는 병적인 방식으로 인류에 내재되었다.
단식, 성적 금욕, 육식 거부 등은 정신적 고양이 아니라 병적인 반응이었다. 니체는 이것이 인간의 건강성과 생명력을 훼손했다고 본다. - 금욕주의는 병에 대한 잘못된 ‘치료법’이다.
성직자들은 정신적 질병에 대해 허무주의적 치료를 시도했으며, 이는 인간의 본성과 삶을 왜곡시키는 위험한 방법이었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7. 성직자 도덕과 귀족 도덕의 대립: 복수와 가치 전도
- 성직자 계급은 육체적으로는 무력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치명적이다.
전사 계급과는 달리 성직자는 싸움을 피하며, 그 무력함에서 생긴 증오를 정신적 복수로 발전시킨다. - 세계사에서 가장 위험한 복수는 성직자의 복수이다.
니체는 성직자 계급, 특히 유대인을 ‘정신적 복수자’로 묘사하며, 이들이 가장 교묘하고 효과적으로 지배 계층을 뒤엎는 가치 전환을 실행했다고 본다. - 유대 민족은 ‘귀족 도덕’을 ‘노예 도덕’으로 전환시켰다.
유대인은 “가련한 자가 선한 자다”라는 새로운 방정식을 내세웠고, 이것은 귀족적 가치 체계를 완전히 뒤엎는 최초의 대전환이었다. - 기독교는 유대인의 가치 전환의 계승자다.
이 전도된 가치체계는 이후 예수와 기독교를 통해 더욱 확대되며, 결국 ‘도덕에서의 노예 폭동’을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고 니체는 본다.
8. 사랑은 복수에서 태어났다: 복음은 복수의 전략이었다
- 예수의 사랑은 복수심의 열매다.
니체는 기독교의 ‘사랑’이 단순한 긍정이나 자비의 감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은 유대적 증오, 즉 복수심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가장 정교한 가지였다. - ‘구세주’는 최종 복수 전략의 도구였다.
나사렛의 예수는 외형상 유대교를 해체한 인물이지만, 니체는 그를 통해 유대인이 보다 큰 복수의 목표에 도달했다고 본다.
십자가에 달린 신이라는 역설은, 인류 전체가 그 유혹에 빠져들게 만든 정신적 흑마술이며 기만의 걸작이다. - 기독교는 전 인류를 정복한 유대 복수의 수단이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상징은, 인류의 도덕과 이상을 유대적 원한 윤리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조작이었다.
9. 노예 도덕의 세계사적 승리와 그 독의 침투
- 천민 도덕의 승리는 의심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 기독교는 이 ‘노예의 독’을 전 인류에 주입한 통로였다.
니체는 기독교를 ‘도덕적 독’의 매개체로 본다. 이 독은 인류의 정신에 깊숙이 침투했고, 지금도 그 영향은 점점 더 세련되고 교묘한 방식으로 퍼지고 있다. - 교회는 이 독을 가속화하는가, 아니면 저지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을 유혹하지 못하며, 오히려 도덕적 피로감과 환멸을 유발하는 존재가 되었다.
니체는 이 점에서 교회가 오늘날 자유정신을 가능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본다.
10. 귀족 도덕과 노예 도덕: 두 개의 윤리 체계, 두 개의 인간상
노예 도덕의 기원: 원한(ressentiment)의 창조성
- 니체는 도덕의 역사를 “노예의 반란”으로 본다.
- 노예 도덕은 무력한 자의 원한(ressentiment)에서 비롯된다. 이 원한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반응할 수 없는 자들이 안으로 응축시킨 감정이다.
직접 복수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그들은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 감정을 왜곡시키며, 마침내 새로운 도덕을 ‘창조’한다. 이 창조는 자기 긍정이 아니라, 타자 부정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 따라서 노예 도덕은 가치의 전도(전복)다. '강한 자', '고귀한 자', '행복한 자'를 ‘악’이라 부르고, 그에 맞서는 약한 자신을 ‘선’이라 명명한다.
악이라는 개념이 먼저이고, ‘선’은 그 반대항으로서 뒤늦게 발생한다.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가치의 반동적 창조”, 즉 타자의 반대로서만 의미를 갖는 자기 정체성이다.
귀족 도덕의 긍정적 창조: 생명과 에너지의 철학
- 반대로 귀족 도덕은 철저히 긍정의 윤리다. 고귀한 자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상태를 긍정하면서 ‘선’을 창조한다.
“우리는 선하다, 고귀하다, 강하다, 행복하다”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비천함’, ‘비속함’, ‘악함’ 같은 개념은 단지 그에 대한 부수적 대조물일 뿐이다. - 귀족은 적을 먼저 만들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강하고 아름답고 충만하기 때문에, 그 충만함의 연장으로서 상대적 개념을 뒤늦게 이름 붙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타자에 대한 경멸은 적극적인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과 태만, 혹은 때로는 연민 섞인 거리감에 가깝다.
두 도덕 체계의 심리적 구조 차이
- 노예 도덕은 타자 중심적이고 반응적이다.
노예는 자기 바깥의 타자를 먼저 보고, 그것을 ‘악’이라 정의한 뒤, 그에 대한 반대어로 자신을 ‘선’이라 규정한다.
이러한 시선의 방향은 자기 중심적인 귀족 도덕과는 완전히 반대다. - 니체는 노예 도덕이 심리학적으로 우회적이고 교활하며, 감정을 억누른 채 복수심을 저장해두는 방식이라고 본다.
이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준비하며, 기회가 오면 공격한다. 이 태도는 직접적 반응이 아니라, 은밀한 기억과 억압의 소산이다. - 반면, 귀족 도덕은 직접적이고 정직하며, 반응보다 창조가 먼저다.
귀족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자신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미워하거나 왜곡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긍정한다.
적에 대한 태도: 원한과 외경
- 노예는 자기 내면에 원한을 축적하며, 그 감정으로 도덕을 구성한다. 그들은 ‘악한 자’를 상상하고 창조한 다음, 그 반대로서 ‘선한 자’로서의 자신을 규정한다.
결국 그들의 도덕은 타자를 위한, 타자에 의한, 타자 중심의 자기 정체성이다. - 귀족은 적을 만들기보다, 적을 필요로 한다.
단, 그 적은 멸시할 존재가 아니라, 존중할 만한 강자여야 하며, 적의 존재는 자신을 더욱 빛내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이 외경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적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오히려 자기 자신의 고귀함을 확증해주는 수단이 된다.
귀족 도덕의 무심한 경멸 vs 노예 도덕의 집요한 위조
- 귀족의 세계에서 하층민은 조롱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을 그렇게까지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불행한 자’, ‘불쌍한 자’, ‘가련한 자’ 정도로 묘사되며, 때로는 동정과 관용의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다. - 하지만 노예 도덕의 세계에서는 귀족이 철저히 악마화된다.
‘악한 자’는 잔인하고, 탐욕스럽고, 신을 모독하는 자로 위조된다. 이처럼 도덕은 복수심으로부터 허구의 적을 구성하고, 그에 대한 가상 적대 구조를 형성한다.
두 도덕은 인간성의 두 갈래이며, 두 문명의 기초
- 귀족 도덕은 행동과 창조의 도덕이며, 생명력과 넘치는 자신감에서 나온다.반대로 노예 도덕은 수동성과 복수의 도덕이며, 무력함을 도덕화하려는 감정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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